
트윈플레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트윈플레임 여정을 겪는 사람들은 가족 관계가 유독 좋지 않거나 불우하다”는 게 정설이다.
역기능 가정에서 태어났거나 부모와 일찍 이별하는 등의 이유로 정서적 결핍을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딱히 성장 과정에서 결핍을 겪지 않은 사람들도 이상하게 트윈플레임을 만나는 시점에는 가족과 멀어져 고립무원의 외로운 상태에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이러한 사실을 발견하게 되면 문득 내 가족 관계가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다. 트윈플레임이라는 정교한 설정의 한 구성 요소처럼 보인다. 내 인생이 온통 이 만남을 위해 달려오도록 설계되어 있었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트윈플레임은 유독 가족과 사이가 안 좋거나 멀어질까?
1. 감정을 증폭시키기 위한 결정적인 장치
트윈양은 트윈플레임 사랑에 두 사람의 감정을 증폭시키기 위한 장치가 모두 동원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관련 글 바로 가기)
두 사람은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어떤 설계자가 그 둘을 만나게 해 놓고 서로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게끔 모든 패를 던진 것 같다는 느낌? (관련 글 바로 가기-발행 예정)
그리고 가족 관계의 결핍이야말로 그러한 패들 가운데 가장 결정적인 하나일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정서적 결핍이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채워줄 수 있을 듯한 상대를 만나면 그 인력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설령 성장 과정에서 결핍이 없었다 해도 현재 가족들로부터 소외되어 있다면 마찬가지이다. 사랑은 우리의 생존 조건 가운데 하나인데, 이들에게 유일하게 주어지는 생명줄이 바로 트윈플레임과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같은 뿌리를 가졌지만 요철처럼 다른 모양의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 강하게 이끌리는 패턴이 잘 알려져 있다.
이를테면 폭력 가정에서 피해를 보며 힘들게 자란 사람은 폭력적인 배우자를 만나기 쉽고, 술이나 도박 등의 중독자는 역시 중독자 가정에서 자라난 공의존자를 만나는 식이다. 나르시시스트 가정의 황금아이와 희생량, 러너와 체이서 역동과 관련해서 잘 알려진 회피형 애착유형과 불안형 애착유형도 그러한 경우이다.
머레이 보웬의 ‘세대 전수(Generational Transmission)’나 에릭 번의 ‘인생 각본(Life Script)’ 같은 개념들이 이러한 현상을 잘 설명해 준다.
하지만 트윈플레임의 끌림을 이러한 심리학적인 현상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심리학적인 이유에서 이끌린 커플들이 대개 주어진 역할을 반복하면서 자연스럽게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형성하는데 반해, 트윈플레임은 자신의 상처를 상대에게서 거울처럼 비추어 보며 이를 감당하지 못해 분리의 길로 들어선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트윈플레임은 강제로 영적인 성장과 치유의 길로 내몰린다. 일반적인 커플들이 가족 관계에서 물려받은 자신의 익숙한 역할을 반복하기 위해 만난다면, 트윈플레임은 그것을 깨부수기 위해 만난다고 할 수 있다.
2. 오레스테스 신화의 비유: 가족적 상처는 영적 성장을 위한 부름
M.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할 길』에는 오레스테스 신화의 비유가 나온다. 오레스테스의 가문은 할아버지의 오만 때문에 저주를 받아 어머니가 아버지를 살해하는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그리고 오레스테스는 헬라의 명예법에 따라 고민 끝에 아버지를 죽인 자를 살해할 의무를 이행한다. 그런데 헬라에서 가장 큰 죄가 또한 어머니를 죽이는 것이었기에, 그는 복수의 여신들(정신 질환)이 따라붙는 천벌을 받는다. 하지만 오레스테스가 자신의 행위에 대한 결과를 기꺼이 책임지고자 했으므로, 신들은 나중에 그의 가문에 내려진 저주를 거두고 복수의 여신들을 자비의 정령으로 변화시켜 오레스테스 곁에 계속 머무르도록 한다. 펙은 이 신화를 통해 가족의 저주와 상처를 스스로 떠맡아 치유했을 경우 그것이 도리어 지혜와 축복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한다.
“자신의 정신 질환을 직시하고 그것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변화를 자기 내부에 일으키는 사람은, 정신 질환을 치유하고 자기 조상과 어린 시절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본인 스스로도 새롭고 다른 세상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한때 자신이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이 도리어 행운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M. 스캇 펙, 『아직도 가야 할 길』 중에서
가족에게서 유래하는 상처는 개인의 상처 가운데에서도 가장 근원적인 것에 속한다. 어쩌면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평생을 안고 가야하는 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치유될 수 있다면, 그 상처는 마치 오레스테스에게 자비의 정령이 함께하게 된 것과 같은 엄청난 축복의 통로가 된다. 어려움을 겪어본 적이 없는 이들은 감히 도달하기 힘든 단단함, 다른 어려운 이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 그들을 도울 수 있는 현명한 지혜,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만들어내는 기쁨과 행복…
펙은 가족의 저주와 상처를 성경의 “부름”(마태복음 22:14, 새번역)에 비유한다. 다른 이들에 비해 어려운 가족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상처의 치유와 영적인 성장에로, 말하자면 하나님께로 부름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마음이 부서진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고 계신다.(시편 34:18 참조)
3. 퇴로의 차단이 만들어낸 안전한 울타리
사랑은 우리의 생존에 가장 필요한 조건 가운데 하나이다. 단언컨데 우리는 사랑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으며, 우리의 부서진 마음도 사랑 없이는 치유될 수 없다. 이는 가족적 상처의 치유와 성장이 반드시 트윈플레임과의 관계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다른 관계에서 이미 이러한 과제를 수행한 끝에 트윈플레임을 만난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에도 트윈플레임을 만난 사람은 영적인 세계에로(하나님께로) 부름을 받은 사람이며, 트윈플레임을 만나는 시점에는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가족 관계에서 단절이나 독립을 경험하는 것 같다.
트윈플레임에게 서로의 존재 외에 다른 사랑의 공급처가 차단되었음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트윈양은 그것이 서로를 끌어당기기 위한 장치일 뿐만 아니라 서로를 마음에서 놓을 수 없도록 퇴로를 차단하는 장치라고 생각한다.
치유와 성장은 반드시 고통을 수반한다.(관련 글 바로 가기) 서로에게 강력하게 끌렸을지라도 그 관계가 달콤함보다 고통이라면 누구나 도망치고 싶어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어도 그 관계는 사랑이고, 그것도 나를 온전히 품어주는 흔치 않은 사랑이다. 그것을 놓는 순간 또다시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의 나락으로 떨어져야 한다면 두 사람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그 줄을 놓을 수 없고,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두 사람의 안전장치가 된다.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방식도 피하며 돌아서는 방식도 다 가능하다. 하지만 잊거나 무심해지는 방식은 가능하지 않다. 어떤 방식으로든 두 사람은 이제 영원한 사랑을 약속 받은 셈이다.
트윈군은 멀리 떠났지만 트윈양은 그와의 만남 후 엄마와 오빠가 용서됐다. 머리로 하는 용서를 넘어 진정으로 서운한 마음이 녹아 사라지는 것은 내가 온전히 사랑을 받는다는 푸근한 마음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하나님 사랑의 특성은 흘러 넘침이다.
나는 이 사랑이 하나님에게서 왔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를 지으신 주님, 내 안에 계셔.
처음부터 내 삶은 그의 손에 있었죠.(내 이름 아시죠 / 작사: Tommy Wal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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