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과 윤회는 정말 있을까? 이이다 후미히코 『트윈 소울』

윤회하는 트윈플레임 남녀

트윈플레임 세계관에서 전생에 대한 믿음은 거의 필수인 것처럼 보인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운 이끌림이나, 수행도 안 한 사람이 갑자기 쿤달리니 각성을 한다든지 등은 전생에 대한 개념 없이는 설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관련 글 바로 가기)
트윈양은 기독교 교인이어서 기본적으로 전생과 윤회를 믿지 않는다.
그렇지만 전생과 윤회의 개념이 동서고금에 걸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사실에 흥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윤회나 전생, 또는 환생에 대한 믿음이 불교나 기타 인도의 제 종교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같은 쟁쟁한 철학자들도 모두 윤회를 믿었다.
소크라테스가 억울하지만 기꺼이 독배를 마신 이유 중에 하나도 윤회를 믿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동일 선생님의 『라틴어 수업』에 의하면 라틴어 어휘가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한 것도 많다고 하니, 고대 그리스철학자들도 인도의 고대 종교에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
종교를 떠나 현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전생이나 환생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다.
틱낫한 스님은 『틱낫한의 사랑법』에서 “첫사랑은 맨 처음 사랑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전생의 인연이 없다면 처음 만난 순간 그토록 사랑에 빠지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묻는다.

트윈양은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전생과 윤회가 없다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인류의 성현들이 윤회를 말하고,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전생을 믿고, 또 체험한다고 말하는 것일까?
기독교적 도그마를 넘어 좀 더 유연하게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교리란 말로 표현되는 것이고, 진리는 말로 표현되기 힘든 것이니 말이다.
그러다 트윈양은 이이다 후미히코의 책 『트윈 소울』에서 가장 그럴듯한 설명을 발견하게 되었다.

『트윈 소울』은 일본의 한 국립대 경제학과 교수인 이이다 후미히코의 임사체험을 기록한 책이다.
24시간의 임사체험 동안 저 세상에 넘어가 궁금한 것들을 질문하고 답을 받는 과정에서 환생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에 따르면 환생이란 직선적인 시간 관념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개념이다.
즉 전생이나 윤회 같은 것들은 물질세계에 존재하는 인간들의 관점이라는 것이다.

비물질적인 정신세계에서는 물질세계처럼 ‘직선적으로 전진하는 시간’이라는 관념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과거’도 ‘미래’도 없으며, ‘환생’이라는 현상의 해석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물질세계의 말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굳이 말로 표현한다면, 정신세계에서는 모든 존재가 모든 시간에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재’가 영원히 계속되는 것입니다.

(이이다 후미히코, 『트윈 소울』 (전파과학사) 중에서)

이이다 후미히코 '트윈 소울' 전자책 표지 사진

생각해보면 영혼의 입장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존재하기 때문에 이 시대에도 저 시대에도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리고 각 시대에 맞는 육신의 옷을 입고 있을 따름이다. 그것이 현생의 우리에게 ‘윤회’라는 말로 번역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동시’라는 말조차 시간적인 개념이므로 영혼에게 어울리는 표현은 아니다. 영혼은 그저 존재한다. 시간을 초월해서.

영혼이 영원하다고 할 때, 원래 ‘영원(aion)’이란 말은 두 가지 뜻을 갖는다: 1) 시간적으로 무한히 이어지는, 2) 시간을 초월해 있는.
즉 영혼이 영원히 산다는 말을 2)번의 의미로 해석하면, 영혼이 꼭 어떤 특정한 시대에만 육신의 옷을 입고 있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환생은 있습니까 없습니까?’라는 물음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겠지요.

요컨대 관점이나 표현 방법의 차이인 셈이죠.

(이이다 후미히코, 『트윈 소울』 (전파과학사) 중에서)

이이다 후미히코의 책에서는 영혼이 환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소득은 배움과 성장이라고 말한다. 그럼 육신의 옷을 입지 않은 영혼들은 성장을 할 수 없는 것일까? 관련된 교리로 천주교에는 죽어서 천국에도 지옥에도 가지 않은 영혼들이 가는 연옥이라는 곳이 있는데, 연옥 영혼들은 스스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믿음이 있다. 이 세상의 다른 누군가가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영혼들이 만약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성장을 계속할 수 있기 때문에 연옥은 필요치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한편 M. 스캇 펙은 『저 하늘에서도 이 땅에서처럼』에서 영혼이 사후에도 계속 성장한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이들은 모두 ‘믿음을 통한 즉각적인 구원’이 아니라 ‘성장을 통한 구원 여정’이란 생각에 기반하고 있다. 결국 전생이나 윤회에 대한 믿음은 어떻게 해도 기독교 교리에 배치된다. 흠냐… 이쯤 해두자.

이럴 때는 “삶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未知生 焉知死)”라는 공자님 말씀을 읊을 수밖에 없다.

사실 트윈양은 전생이 있고 없고가 그다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 생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면 열심히 사랑하고, 지금 배우고 성장하며, 이생의 소명에 정성을 다 하면 그뿐 아닐까?
트윈플레임을 만났든 안 만났든 말이다.
트윈플레임 세계관을 논할 때에도 딱히 전생이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무엇을 택하고 행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에 그다지 영향력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전생이 있다면 그와 나는 아마도 수많은 생을 함께 하며 알콩달콩 살았겠지, 하며 만날 수 없는 지금을 위로할 뿐이다.

트윈양

어쩌다 트윈플레임 세계로 건너온 트윈양의 황당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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