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윈플레임은 왜 만날 사주, 타로, 명상 등과 얽힐까

광야를 홀로 걷는 트윈양

트윈플레임에 관한 정보를 얻으려고 검색을 하다 보면, 트윈플레임에 관한 정보는 대부분 사주나 타로 등과 얽혀 있다. 아니면 명상센터에서 수련하는 내용을 다루는 곳에 정보가 올라와 있다.
트윈플레임을 만난 사람들이 많은 경우 극심한 고통 속에서 헤매고 있다 보니, 이들을 타깃으로 한 마케팅과 관련해서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드물게 트윈플레임 경험을 기록하는 개인의 블로그를 보아도 그들은 십중팔구 사주나 타로를 직접 볼 줄 알거나 최소한 그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다.
명상센터를 다니며 요가나 마음수련 같은 걸 하는 이들도 드물지 않다.

오래된 제도권 종교에 몸담고 있는 나로서는 그런 게 좀 이상해 보이는 게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나는 다르냐 하면, 사실 나도 사주를 볼 줄 알고, 타로도 좀 안다. ㅡㅡ;
그중에 사주는 혼자 심심할 때 좀 보고, 타로는 보지 않는다.

사주를 공부해 본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사주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편인이 강한 사주라는 것을.
편인은 제도권 학문이 아니라 대중적이지 않은 특수한 학문, 또는 신비한 정신세계나 예술세계, 말하자면 철학, 심리, 종교, 영성 등을 의미한다.
물론 나도 편인이 있다.
그런데 트윈플레임을 만나는 사람들이 죄다 이런 성향이라니 신기하지 않은가?

일단 트윈플레임 세계관에 따르면 이들은 오래된 영혼이다. 각자 오랜 세월 윤회를 거듭하며 성장을 계속한 끝에 지구 졸업반에 가까워지면 서로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이 만나게 되는 이유는 단순히 달콤한 로맨스를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한다.
거대한 영혼의 각성과 우주적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나?
트윈플레임은 하나의 영혼이 둘로 나뉜 존재이기 때문에, 서로를 거울삼아 자신의 어두운 면을 치유하고, 인간적인 에고를 넘어 무조건적인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며, 마침내 그 과제가 완료되면 하나로 결합되어 지구 전체와 인류의 의식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시간을 초월해 있다는 영혼이 오래된 영혼과 새로운 영혼이 따로 있다는 게 이해가 안 가기는 하지만, 영성이 결국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가장 근원적인 가치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설명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아무튼 트윈플레임을 만나면 미친 듯이 성장을 한다는 얘긴데…
성장의 과정은 항상 통증을 수반하니 이들이 타로와 사주, 마음수련 등을 찾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남의 얘기하듯 먼 산 바라보기…)
잘 나갈 때는 우아하게 교회에 앉아 설교를 듣고, 인생에 풍파가 닥치면 교회에 발 끊고 점집을 들락거리는 사람들도 여럿 보았다.
하물며 트윈플레임을 만난 사람들은 그야말로 인생에 폭탄이 떨어진 격이니 사주든 타로든 명상이든 뭔가 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원래 기성 종교 내에서도 고통은 신앙 성숙을 위한 강력한 트리거다.
벼랑 끝에 선 사람만이 간절히 신을 찾고, 고시공부하듯 열심히 기도하며, 그러다가 하나님도 만나고, 성장하고 그러는 것이다.
그런 걸 “광야 체험”이라고 부른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땅을 탈출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이르기까지 광야를 걸어간 사건에 비유한 말이다.
광야에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만 믿고 따라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고 바위에서 물이 솟는 체험이 반복되면서, 그분께서 필요한 것은 다 마련해 주신다는 믿음이 생긴다.
하나님을 느끼고, 소통하는 법을 배운다.
타로 보고 점치고 하면 배우지를 못한다.

트윈플레임 업계에서는 ‘상위 자아’와 ‘우주’라는 표현을 쓰면서 나름 영적인 소통을 훈련하는 것 같다.
엔젤넘버 같은 것도 그렇고, 어떤 사람들은 뭔 채널링 같은 걸 해서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채널링이란 전통 종교로 치면 ‘영매’이고,
기독교 내에서는 성령의 은사를 받은 ‘예언자’ 같은 역할인데,
이쯤 되면 단순히 타로 보고, 마음 수련 하는 정도가 아니라 어떤 새로운 종교를 갖는 거다.
원래 특정 종교의 이름을 걸지 않고 종교가 아닌 척하면서 은근슬쩍 스며드는 게 뉴에이지 종교의 특성이다.
그러고 “눈을 감고 호루스의 눈을 생각하세요” 이 지랄 한다.

기왕 종교를 가질 거면 근본 있는 종교를 가져야 한다는 게 트윈양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종교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다루기 때문에 잘못될 위험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영혼의 생사여탈을 쥐고 흔드는 만큼, 만약 잘못될 경우 그 해악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제도권 종교가 트윈플레임에 관해서 얘기도 안 해주고 고정된 틀이 답답하기는 하지만, 오랜 세월 훌륭하신 대가들의 경험과 검증이 축적된 만큼 영성은 가장 깊이가 있다.
제도 종교의 고정된 틀이란 건 그만큼 영성에 발 디뎠다가 잘못되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오랜 세월에 걸쳐 다져진, 어떤 안전 가이드이다.
사실 타로에도 사주에도 원래 트윈플레임이란 개념은 없다.
그럼에도 잘만 적용해서 풀이하지 않는가.

트윈플레임이란 용어는 현대에 생겼지만 그 현상은 인류의 역사에서 사람들이 계속해서 겪어왔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플라톤의 『향연』에 그런 신화가 실렸을 리 없다.
나의 신비로운 경험을 기존의 누군가가 정리해 놓은 ‘트윈플레임’ 같은 개념틀을 사용해서 이해하는 것은 매우 효율적인 방법이다.
영성도 마찬가지로 기존의 인류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에 귀 기울여보자.
트윈플레임을 만났다고 해서 굳이 정체 불명의 신종 종교 신자가 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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