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아서는 나에게 사랑한단 말 대신에
안녕 안녕 목 메인 그 한마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기에(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 노래: 양희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상주하기 힘든 나라에서 여행 중에 만난 현지 외국인?
명문대를 나오고 유학까지 갔다 온 초엘리트 여성과 고졸인 남성 목수?
모두가 숭앙하는 대형교회 찬양팀 미혼 싱어과 싱글맘의 사랑?
딱히 드라마에 등장하는 재벌 남성과 신데렐라 여성, 로미오와 줄리엣이 아니더라도 생각해보면 현실에서 이루어지기 힘든 사랑은 많은 듯하다.
트윈플레임은 최소 10년 이상의 나이 차이, 사회적 위치나 빈부의 현격한 차이, 스승과 제자 관계 같은 사회적 도덕적 제약, 혹은 언어와 문화가 아예 다른 나라에 살고 있거나, 어느 한쪽이나 양쪽 모두 이미 가정이 있는 경우 등등 반드시 이루어지기 힘든 조건으로 만난다고 한다.
트윈플레임의 본질은 ‘잊을 수 없는 사랑’인데 ‘이루어지기 힘든 사랑’이기까지 하다니, 이 외통수에 걸린 것만 같은 이상한 상황은 왜일까?
도대체 왜?
1. 미완성의 감옥, 감정을 극대화하는 가장 강력한 증폭 장치
많은 사람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에 의문을 품곤 한다. 그들이 현실에서 결혼해 일상을 함께했어도 그토록 서로 사랑했을까?
현실의 구질구질함을 겪어본 이들은 대부분 아니라고 답한다.
심리학에는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라는 말이 있다.
1920년대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인 자이가르닉(Bluma Zeigarnik)이 밝혀낸, “어떤 일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강한 긴장 상태가 유지되며 기억되지만, 일이 끝나면 긴장이 풀려 기억 속에서 쉽게 지워져 버린다”는 현상을 일컫는 용어이다.
이른바 ‘미완성 효과’라고도 하는데, 아름답게 결실을 맺은 사랑보다 고백도 못 해봤거나 중간에 어설프게 헤어진 첫사랑이 유독 아련하고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트윈플레임의 사랑은 바로 이 자이가르닉 효과의 절정이다.
감정이 원래 격렬하기도 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조건이 감정을 더욱 증폭시키기도 한다.
트윈플레임 사랑에는 이상하리만치 누군가가 설계하거나 일부러 짜 맞춘 것처럼 감정을 극대화하는 모든 장치가 동원된다.(관련 글 바로 가기)
2. 비극의 탈을 쓴 운명적 사랑의 징후
이것이 좀 아이러니한 게,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이루어졌으면 더 이상 운명적인 느낌이 아니었겠지만, 역설적으로 운명적인 사랑이었기 때문에 이루어질 수 없었다는 얘기다.
완성된 사랑은 현실의 영역이지 문학의 영역이 아니다. 말하자면 그들이 이야기의 주인공이었으므로 그 사랑은 이루어져서는 안 되었다.
인류사의 모든 사랑의 원형, 신화 속의 사랑은 항상 미완성이다. 견우와 직녀, 오르페우스와 에우뤼디케, 트리스탄과 이졸데…
만약 오르페우스가 아내를 무사히 구출해서 지상에서 아이 낳고 평범하게 늙어 죽는 이야기였다면, 그들의 사랑이 3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구전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에 뒤를 돌아보아 실패했다”는 강렬한 아쉬움이 인류의 집단 무의식에 깊은 자이가르닉 효과를 남겼고, 덕분에 그 이야기는 영원히 닳지 않는 생명력을 얻었다.
트윈플레임 사랑은 뭔가 완전한 사랑의 원형을 보여주려는 느낌이 있다.(관련 글 바로 가기)
어떤 이유에선지 그것은 나에게 강렬한 각인을 남기기 위해 내 인생을 찾아온 운명적인 사랑이기에, 필연적으로 이루어지기 힘든 조건을 가져야만 했던 것 같다.
즉 트윈플레임 사랑의 목적은 현실의 알콩달콩과 구질구질이 아니라는 말이다.
내 인생에 어떤 신화 급의 드라마를 쓰는 게 목적이라는 말이다.
3. 현실의 막다른 길, 영혼의 차원으로 빠져나가는 새로운 통로
그렇다면 그 사랑은 어떤 드라마를 쓰고 싶어 하는 걸까?
트윈플레임은 기본적으로 영적인 현상이다.
텔레파시, 시공을 초월한 연결, 에너지 줄기와 영혼의 합일 등등, 온갖 영적인 현상을 기본으로 깔고 들어간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들은 매일 만나서 사랑을 나누는 사이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냥 카톡 보내고 전화하고 직접 만나서 대화하면 되는데 뭔 텔레파시가 필요하겠는가?
서로 사랑한단 말 한 마디조차 할 수 없고 눈빛만 마주쳐야 하는 상황, 멀리 떨어져서 전화 한 통도 할 수 없는 상황, 애타게 그리워하면서도 현실의 장벽 앞에서 벽만 긁어야 하는 상황, 그 간절한 마음이 텔레파시와 에너지 줄기 같은 신비로운 연결을 만들어 내는 거다.
말하자면 트윈플레임은 사랑이라는 강력한 에너지가 극한의 상황에 내몰려 영적인 통로가 열리는 현상이다.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깨닫고,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관련 글 바로 가기)
신화 속 사랑은 그 간절한 애달픔에서 끝이 나지만, 트윈플레임 사랑의 여정은 생각보다 거창하다.
만물의 생성과 근원을 캐묻고 결국 ‘부동의 동자(Unmoved Mover)’에 이르러야 끝이 나는 형이상학이다.
내면을 들여다 보고 자아를 내려놓음으로써 끊임없이 성장하고, 그를 통해 결국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여 신인합일을 추구하는(성화되는) 종교적 여정이다.
4. 무조건적인 사랑의 학습, 인간의 사랑을 넘어 신성으로 가는 문
영적인 통로를 여는 데에 사용되는 에너지가 왜 하필 사랑일까?
그것은 만물의 생성과 근원, 우주의 창조와 작동 원리가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로 표현했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요한일서 4:7-8, 새번역)
트윈플레임 여정을 걷다 보면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있어도 그 사랑을 버릴 수 없음을 알게 된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벌써 끝났을 관계도 결국 받아들이고, 받아들이고, 받아들이게 된다.
나의 이상형, 나의 바람, 내가 생각한 사랑의 기준 등등을 하나씩 다 내려놓게 된다.
트윈플레임 여정에는 잘 사랑하고 잘 못 사랑하고만 있지, 사랑하지 않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내가 상대를 소유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의 잘못을 묵인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통해 나의 결핍을 채우려는 의도를 모두 내려 놓고 그의 존재 자체를 조건 없이 사랑하는 마음이다.
이는 아프게 나를 깎고 자아(Ego)를 내려놓는 과정이며,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신앙의 여정과 매우 닮았다.
그런 의미에서 트윈플레임은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이다.
트윈플레임 사랑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데려다 준다.
나의 짝꿍을 사랑하는 것 같지만 결국 하나님께로 이르며, 하나님 안에서 서로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운명이 있다면, 아니 하나님이 계시다면, 바로 이러한 이유로 우리에게 이루어지기 힘든 조건의 트윈플레임 사랑을 마주하게 하신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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