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에 타로카드를 볼 줄 아는 친구가 있었다.
우리 집에 놀러올 때 심심하면 타로 카드를 들고 와서 궁금한 거 다 물어보고,
하루 종일도 보면서 놀곤 했다.
자연스레 관심이 생겨 나도 그 친구한테 타로카드에 관한 책도 빌려보고(외국어로 된 책이라 많이 읽지는 못함), 카드 구성에 관해 솜솜 뜯어보곤 했다.
그런데 그 친구 말이, 한 번은 타로의 원리가 궁금해서 타로에게 어떻게 답변을 주는 거냐고 질문을 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타로 카드의 뒤에서 어떤 영이 대답을 해주는 거라는 너무나 명확합 답이 나왔다는 것이다.
어떤 영일까?
알 수 없다.
요즘 어린이들 사이에서도 귀신을 불러내는 주술카드 같은 게 유행이다.
초등학교 앞 문구점이나 분식점 등에 가면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
그게 질문하면 은근 맞는 답을 준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아이 말이, 어떤 친구가 그런 카드를 교회에 갖고 왔는데, 교회 마당에서 그걸 해 보면 답이 하나도 안 맞는다고 한다.
신기한 건 교회를 벗어나면 다시 맞는다고.
타로는 무의식을 읽는다는 느낌이 있다.
나도 명확히 인지하지 못하는 내 무의식을 선명히 그림으로 찍어내는 느낌?
내가 생각이나 태도, 마음, 결심을 바꾸면 카드 결과도 바뀐다.
근데 그게 신점도 그렇다.
그래서 신점은 과거는 맞추지만 미래는 맞추지 못한다는 말이 있지 않나.
어떤 사람들은 타로를 융(Carl Gustav Jung)이 말하는 ‘보편적 무의식’을 비추는 거울로 해석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유의미한 우연의 일치로 여기기도 해서,
점집보다 더 편하고 친근하게 접근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렇지만 내가 볼 땐 타로가 점술, 마술, 또는 신탁, 미래 예언 등의 범주에 속한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리고 그건, 개신교와 천주교, 정교를 막론하고 모든 기독교인들에겐 엄격히 금지된 거다.
성경에서 특히 ‘출애굽기’를 읽어보면 어마무시하게 강조된다.
아니 성경 전체에 걸쳐 반복해서 강조된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영과 접선할 것인가’
는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난 타로는 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