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윈플레임 그에게 DM인 내가 마주한 이상적인 사랑의 깊이

알콩달콩 같이 밥 해 먹는 트윈양과 트윈군

트윈플레임은 하나의 영혼이 음양으로 나뉘어 두 사람이 각각 ‘신성한 여성성(DF)’과 ‘신성한 남성성(DM)’을 담당한다고 한다.(관련 글 바로 가기)
논리적, 분석적이고 구조와 체계에 대한 집착이 남다른 트윈양은 분명히 ‘신성한 남성성’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포장과 거품을 싫어하고, 직설적이며 투명한 소통을 좋아한다. 트윈양 자신이 좋아하는 표현으로는 ‘담백함’이고, 트윈군께서는 트윈양에게 “예리하다”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이러한 DM 성향의 트윈양이 실제 남자들을 만나면 무슨 일이 생길까?

보통은 신성한 남성성을 가진 DM 여성이 현실에서 남성들을 만나면 극단적인 두 가지 반응이 일어난다고 한다.
미성숙하거나 권위주의적인 남자들을 만날 때는 튕겨져 나가거나 충돌한다. 가스라이팅과 통제가 통하지 않고 남자의 자격지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반면 성숙한 남성은 소모적인 밀당을 하지 않는 명확한 소통에 매력을 느끼며, 서로의 독립성을 존중하여 인생을 걸고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든든한 동반자가 된다고 한다.


희생을 강요하는 남자들

트윈양이 실제로 평소 가장 어려워하는 남자 유형이 바로 권위주의적인 유형이다.
그들은 대부분 통제와 지시의 이유를 내게 설득하지 못한다. 논리가 나만큼 강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상 논리가 아닌 권위를 무기로 쓰기 때문이다.
설득은 ‘내 의견이 틀릴 수도 있고, 상대방 의견이 맞을 수도 있다’는 수평적 관계를 전제로 하는데, 이들은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하며 그래서 서열과 상하(上下)가 당연하다는 확신에 차 있다.
결국 설득을 하지 못하니 강압을 하고, 가스라이팅을 시전 하며, 마지막에는 폭력도 동원한다.
이런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도 은근히 나에게 경계심을 가지고 나를 까내리려 하는 남자들도 가끔 만난다. 뭔가 나를 상대로 서열 정리를 시도하는 느낌?

가장 극단적인 경우는 남녀관계에서 상대 여성을 자기 삶의 장식품이나 부속품으로 여기는 경우이다.
여자가 밥도 해줘야 하고, 돈 벌어서 자기가 성공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도 해줘야 하며, 자기가 빛날 수 있도록 여자가 멋지기까지 해야 한다.
“내가 성공하면 우리 둘 다 좋은 거 아닌가”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그 여자가 무엇을 원하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상대 여성을 인격을 가진 동반자가 아니라, 자기 성공을 위한 도구로 삼는 셈이다.
그에겐 상대 여성의 희생도 ‘우리’를 위한 것이니 희생이 아니고, 자기 성공도 ‘우리’를 위한 것이니 희생이다.
한 마디로 분리-개별화(Separation-Individuation)가 안 되어서 상대방의 인격을 말살해 자기 안에 통합시키려는 경우랄까?

그런 의미에서 트윈양이 결혼 상대남으로 가장 꺼려하는 직업군이 있다면 바로 대통령, 외교관, 목사님, 군인이다.
바로 ‘누군가의 부인’이란 역할이 자신의 정체성이 되는 경우이다.
스스로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된 것도 아닌데 ‘영부인’ 또는 ‘퍼스트레이디’란 칭호를 달고 공식 석상에 나가야 하며, 남편의 임지를 따라다니며 생활해야 하거나, 남편 직장에서 ‘가족수당’이란 임금까지 받아가며 남편의 업무에 동행해야 하기도 하고, ‘사모님’이란 이름으로 개인의 감정과 사생활 영역까지 헌납해야 하기도 한다. 그리고 남편을 통해 엮인 인간관계와 생활반경 안에서 남편의 정체성을 들쓰고 사람들을 대해야 하기도 한다.
분명 그게 맞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좀 숨 쉬기 힘들 것 같다.


희생을 자청하게 하는 남자

그런데 트윈양은 트윈군을 만나고 정말 이상한 경험을 했다.
평생 그의 삶의 자리를 따라다니며 그의 그늘에서 밥만 해주고 살아도 행복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 것이다!
이것은… 권위주의적 남성들이 그토록 바라마지않던 여성성의 극치가 아니겠는가.
단언컨대 트윈양은 평소에 밥, 청소, 빨래 등을 즐겨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몸이 약하고 머리가 비대하여 방바닥에 딱 붙어 생각만 하고 최소한의 활동만으로 연명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어떤 좋은 남자를 만나도, 트윈양은 은근슬쩍 자기 갈 길을 가고 싶어 했지 그렇게 ‘밥만 해줘도 좋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원래 영혼은 신성한 남성성과 신성한 여성성을 다 가지고 있다더니, 그가 내 안의 신성한 여성성을 이끌어낸 것인가?

그뿐만이 아니다.
“그댈 위해서 나의 심장쯤이야 얼마든 아파도 좋은데~♪”,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도 그대 웃어준다면 난 행복할 텐데~♬”
라는 노래 가사가 내 마음이었다.
그가 흔들릴까 봐 눈물도 보이지 않으려 무던히도 애를 쓰고, 스스로를 지워 모습을 감추기도 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를 위한 기도도 엄청 했다.
권위주의적인 남자들이 그토록 바라 마지않는 희생적인 사랑이 저절로 흘러나오다니 대체 이것이 무슨 조화인가?

트윈양은 세 가지 가설을 세운다.
1) 트윈양이 트윈군을 너무나 존경하는 나머지 그의 삶에 편입되는 것만으로도 자기 삶이 의미 있을 것 같다고 느낀다.
2) 트윈군이 트윈양을 너무나 존중해 주는 나머지 트윈양이 자유로움과 편안함을 느껴 그에게 자발적으로 권위를 부여했다.
3) 트윈플레임은 원래 ‘분리-개별화’가 안 된다.
어느 게 정확히 맞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내가 제일 먼저 느낀 것은 2번이다. 1번과 3번은 AI와 대화해 나가면서 약간의 힌트를 받았는데, 그다지 틀린 것 같지는 않다.

나중에 챗지피티와 대화를 해보니, 서사를 절반도 얘기하기 전에 챗지피티는 약간 짜증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지금 뭐 하는 거니? 사랑 얘긴 줄 알고 듣고 있었는데, 사랑이 아니라 공명을 하고 있잖니?”
사랑에는 욕망과 소유의 서사가 있어야 하는데 내 이야기에는 그런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너무 나 자신처럼 사랑한다는 것이다.


트윈플레임, 우리가 꿈꾸는 사랑의 이상향

트윈플레임을 만난 사람들은 생전 처음 경험하는 극도의 이타적인 사랑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를 볼 수 있었을 때, 그리고 볼 수 없게 되었을 때에도 내가 느낀 감정은 항상 그것이었다.
어쩌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평범한 생활이 되면 사라지는 감정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감정을 느꼈다는 것 자체는 소중하다.
그리고 새롭게 알게 된 건, 내가 그토록 환멸해 마지않았던 권위주의적인 남자들의 이기적인 소망이 그렇게 허황된 것만도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이상적인 사랑을 바랐을 뿐이다. 그것을 권위로 강요하는, 신성하지 않은 남성성을 가졌을 뿐이다.

이상적인 사랑은 원래 유아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어머니 자궁 속으로의 회귀, 완전한 합일, 그리고 무조건적인 수용.
원래 이타적인 사랑을 바라는 마음이 이기심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 이타적인 사랑이 강요 없이 자발적으로 우러나오고, 그에 감동받아 서로를 더 사랑하게 되는 것.. 트윈플레임에서는 그게 자연스러운 일 같다.

드라마나 영화에는 이상적인 사랑이 자주 나온다.
잊을 수 없는 사랑, 운명적인 사랑, 영원한 사랑…
인류의 근원적 욕망을 투사한 판타지인 줄로만 알았던 <파리의 연인>, <사랑과 영혼>, <첫사랑>,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등등은 사실 그런 사랑의 원형이 실재하기 때문에 만들어질 수 있었던 작품들이라는 걸 이제야 알겠다.

신을 갈망하는 인간의 본성이 신의 존재 때문이라면, 완전한 사랑을 갈망하는 인간의 본성도 완전한 사랑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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